사람이 죽었다,는 표현이 무신경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해왔는데 근데 죽음을 실감한 일들이 몇 있었다.
크리스 코넬이 죽었을 때, 그 사실을 바로 알지 못했지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즐겨듣던 노래들을 만들고 부르던 뮤지션의 죽음은 단지 일종의 세대이양이라 받아들여졌으니.
03학번 선배 조ㅅㅎ가 죽었단다, 라고 ㄱㅇ이를 통해 듣게 되었다. 속절 없는 외로움 속에서 헤매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지. 일면식이 있고, 그녀의 절친한 친구였던 이ㅈㅎ, 그리고 ㅎㄹ형과 함께 밥을 먹고, 오락실을 간 게 그녀와의 모든 기억이었다. 그리고 ㅎㄹ형과 잠시 좋은 감정으로 만나다가 헤어졌다는 것도.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외모에, 어렵사리 합격한 임용고사, 남부러워 할 것 없는 배우자를 만나 이 작은 하늘 아래서 그저 평안히 사는 줄만 알고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불행은 닥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범한 일상이 엄습받는다. 그녀의 죽음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건조하게 착색되기 마련이지만, 그 결정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고 고통 아래 짓이겨졌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ㅅㅎ를 통해 장ㅇㅎ 선생님이 암으로 투병하다 2015년에 작고하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부인과 이별하고, 장애가 있는 딸 하나를 키우면서 결국 돌아가셨구나. 삶은 왜 이리도 짖궂을까. 불행한 사람을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일을, 그리도 쉽고 서스럼 없이 하는 듯만 해 원망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온 때가 2014년으로 기억한다. 피곤한 일에 얽히기 싫어 전화를 받지 않았었는데, 그 길로 그게 마지막 수신이 될 줄은 몰랐다. 한 달 전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는데, 사용하지 않는 전화라는 차가운 음성만 들려왔고 그게 마지막 발신이 될 거라곤, 그때엔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경제적으로 힘들던 대학 시절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은혜도 제대로 갚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걸려온 전화마저 뿌리쳤다는 사실에 아득하다.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와 거울을 보다 문득 죽음 앞에서 이 모든 행복과 슬픔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언젠간 모든 사람은 죽기 마련이라는 당연한 사실 앞에 누군가가 손금을 보며 '장수하겠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안위를 생각하는 모습이 가여웠다.
ㅅㅎ선배도, ㅈㅇㅎ선생님도 다시 태어나는 삶에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내길 바랄 뿐이다. 잠깐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함께 할 수 있어서 반가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