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의 화해'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14.09.29 잘 가시게, 이십대여
  2. 2014.01.22 근래의 독서들
  3. 2014.01.09 삶은
  4. 2014.01.06 정지용 시 다시 읽기
  5. 2013.12.27 왜 없지 않고 존재하는가
  6. 2013.08.26 계절의 길목 2
  7. 2013.02.06 한 해는 비로소
  8. 2012.12.20 내 탓이오 다 내 탓이니
  9. 2012.10.29 오랜만에 돌아온 이유
  10. 2012.09.25 내 생의 중력 중에서 2

 모든 게 어리숙하고, 어설프던 스무살의 나를 기억한다. 대학교에 처음 발을 들여놓고 신입생 환영회를 하던 날, 공교롭게도 환영회가 열리던 강의실이 아닌 다른 강의실로 오라는 문자를 받게 된다. 잘못된 통보로 인해 아무도 없던 텅빈 강의실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시간 속에 어떤 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해사해 보이는 외모, 낮고 곱게 깔리는 목소리로 반갑다고 인사를 하던 사람. 다른 강의실에선 이미 신입생 환영회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먼저 만나게 된 우린 교정을 거닐게 된다. 음악 이야기를 했고, 생각보다 나이가 나보다 많다는 이야기가 놀랐다.

 아직도 손에 잡힐 듯 떠오른다.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온몸으로 증명하던 차가운 공기와 입김. 낯선 사람과 공간에 대한 막연한 설렘과 두려움. 그 속에서 우린 만났고 이내 곧 친해졌다. 서로를 이해하면서 기꺼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친구라 생각했다. 어디든 다녔다. 그의 고향 의정부는 물론이고 내 고향 대전. 서울 구경 온 촌놈처럼 홍대, 신촌, 이대, 코엑스, 명동, 남산, 구로디지털단지.. 돈이 넉넉지 않던 시기였어도 사람과 풍경을 관찰하고 구경하며 의미 없는 말들을 서슴지 않게 나눴다.

 서울 생활은 지독하게 외롭고도 힘겨웠다. 그때부터 아직도 서울은 나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그저 외롭고 쓸쓸해지고 싶어했던 십대 시절의 고독함과 달리, 숙명처럼 사정없이 날 헤집어 놓았던 근원적 고독감은 정말이지 버텨나가기 힘들었다. 그 좋아하던 음악도, 책도 귀와 눈에 들어올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외로웠다. 그런 날 잡아 이끌어준 사람이 그때 그 사람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는 당위를 알려준 사람이었다.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벽면에 수없이 꽂힌 책들을 한 권씩 차분하게 꺼내며 표시해둔 구절을 읽어보라던 내밀었다. 시집과 기사 스크랩, 헌책방에서 구한 옛날 책들. 어떤 시집 구절을 읽어내려가며 나도 모르게 조용히 눈물을 흘린 그날 저녁도 생각난다. 산발이 된 머리를 해 볼품없던 그 모습으로 파자마를 입은 채 남의 집 방구석에서 시집을 들고 울던 그날밤. 그 사람은 어찌 생각했을까. 나를.

 수업을 듣다 출석만 부르곤 빠져나와 교정에 하릴 없이 앉아 이어폰 한쪽을 나눠끼던 봄날은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여인들은 봄날보다 아름다웠고, 우린 그 여인들을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또 어느 날은 동아리방에서 통기타를 가져나와 점심 때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기타를 연주했다. 되도 않는 노래를 가끔 흥얼거리곤 했다. 그러다 정기 공연에 함께 무대에 선다. 떨린다며 공연 직전에 편의점에 들리자고 한다. 소주를 산다. 레몬소주다. 상큼한듯 하다 역한 알콜 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이 액체가 우리의 성공적인 공연을 보장해주는 묘약인양 삼켜버린다. 공연이 끝났다. 그렇게 1학기도 끝난다.

 천성이 못된 탓에 이형을 힘들게 한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그런 나에게 싫은 내색을 크게 한 기억도 없다. 여러모로 미안하고 고마웠다.

 군 복무 시절 써줬던 편지들도 기억한다. 그리고 휴가 나왔을 때에 데려가줬던 횟집도 기억한다. 사진을 배우고 있다며 짧은 까까머리의 나에게 연신 셔터를 눌러대던 그 모습도 기억한다. 그리고 객쩍게 웃으며 '너무 말라 보이게 나온다'며 피사체가 되길 거부했던 나의 모습도 기억한다.

 이형은 나에게 이십대의 전부였다. 이형과의 추억이 곧 내 이십대 시절의 추억이었으니까. 평소 나서기 싫어하고 사귐에 어색한 나와 이형이 친하게 지낸 이유도 가끔씩 궁금하다. 사람 사이의 일들은 짐작하기 어려운 일 투성이니까.

 축사를 낭독했다. 축시라고 해야 맞을까. 축사도, 그렇다고 축시도 아닌 어쩡정한 글귀들을 써가 낭독했던 오늘 일이 멀고도 먼 일 같기만하다. 이형과 잘 어울리는 신부가 옆에 서있었다. 형은 언제나 그렇게 웃던 미소로 방긋 웃는다. 신부도 미소짓는다. 진심으로 행복해보였고 앞으로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낭독을 마치고 자리에 들어와 이형이 읽었던 사랑의 서약서를 곱씹어 본다. 그저 이형과도 같이 담백한 문장들로 쓴 사랑의 맹서였고, 언약이었다. 가식과 허위는 없었다. 동아리를 함께 하던 시절에 배웠던 창작곡을 축가로 부른다. 떨려보이는 모습이지만 보는 사람은 즐겁다. 소박했던 결혼식이지만 진실했다. 진실은 언제나 힘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삶의 어느 한 막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커튼이 내려지고 난 또다시 홀로 남았다. 그전처럼 느꼈던 폭군같던 고독감이 아니었지만, 다른 의미의 고독감이 슬며시 다가왔다. 저만치 손 흔들며 웃음짓는 스무살적 내 모습이 언뜻 비친다. 잘 있으라고, 잘 살라고. 너의 삼십대도 언제나 그렇듯 좋은 사람과 함께 할 것이라고. 그때까지만 조금 참아볼 수 있겠냐고 말한 뒤 등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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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부터 현재까지 읽었던 책과 책에 대한 단상들


1. 관촌수필 - 이문구

* 소설과 별로 친하게 지내오지 않았지만, 소설가라면 관촌수필을 읽고 누구나가 좌절감을 한 번쯤 느껴보지 않았을까. 한국어로 쓰인 가장 아름다운 글들이며 작가의 아름다운 마음결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이 책으로 인해서 삶의 방향을 많이 수정했다. '시적 인간'이 되기보다 '소설적 인간'이 되기로. 그게 무슨 차이일까. 나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마음 속에서 약간이나마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내밀하게 해보고 있는 요즘이다. 택도 없겠지만!

2. 죄와 벌 - 도스토예프스키, 유성인 역

* 소위 해외 걸작선이라는 작품들의 한계는 번역의 문제와 크게 결부되어 있지 않을까. 안그래도 읽기 힘든 만연체의 문장들 속에서 제 3부의 마지막 부분들에는 크고 작은 오역과 오타들이 눈에 띄어 거슬린다. 소설의 내용은 글쎄, 어찌 되었든 이런 식으로 마지막에 구원 받는다는 구성은 그닥 즐겁지 않다.

3. 김수영을 위하여 - 강신주

* 김수영에 대한 애정이 담긴 안내서 작가 안내서 정도로 보면 될 듯. 사실 이 책을 볼까 하다가, 전공자들이 쓴 김수영에 대한 저서를 읽어보고 싶어 찾아보았는데, 결국 찾기 힘들었다. 물론 논문의 형식으로 나온 글들은 많겠지만, 김수영에 대한 연구나 작가로서의 명성에 비한다면 의외로 저서들이 많은 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읽을 만한 책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개인적 애정으로서의 김수영에 대한 견해를 보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전기적 연구라든지 시 자체에 대한 독해의 연구 등 정갈한 이론의 결과물로 보려면 아무래도 부족하지 않나 싶다. 물론 그게 강신주의 매력일 수도 있겠지만. 무어랄까, 편의점에서 파는 '웰빙 식품'이랄까.

4. 철학, 역사를 만나다 - 안광복

* 고등학교 시절에 읽어보면 좋았을 서적. 책 자체도 금방 읽는다. 현재로서는 읽을 필욘 없다.

5. 조선의 음담패설 - 정병설

* 정병설이라는 저자는 고전 문학 쪽으로 긍정적인 성과물을 많이 낸 연구가이기도 하고, 조선시대 '음담패설'을 주제로 한 책은 없었기에 궁금해서 집어들었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남긴 야담집이나, 민담 등에서 추출한 소위 '야설'들이 실려있긴 하고 희독의 차원에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유발된 흥미를 채워주기에는, 그리고 작가의 이름에 비한다면 앞에 실려있는 음담패설들과 그에 대한 해설들은 그닥 풍부하진 않다. 물론 당대의 풍속도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있다만. 오히려 뒷부분에 부록처럼 실린 세책들의 낙서들이 더 재밌게 읽힌다.

6. 백석의 맛 - 소래섭

* 비국문학자 출신이지만 석박사를 국문학으로 옮겨 수학한 저자라 그런지 백석을 바라보는 연구 독법이 인상적이긴 하다. 하지만 '맛'이라는 소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굳이 외국의 '미감이론'들을 끌고와 백석의 시와 결부시키는게 좋은 선택이었나 의문이긴 하다. 이런 접근도 의미 없진 않다만, 아무래도 이론과 백석의 '맛'의 접지 상태는 소위 '찰지지'못하다는 게 내 인상이다.

7. 야성의 사랑학 - 목수정

* 의심할 것도 없는 쓰레기에 가깝다.

8. 엄마 수업 - 법륜

* 자녀 양육에 대한 여러 고민을 하게 되는 책이다. 기실 자녀 문제의 대부분은 부모가 자녀를 바라볼 때 인격체로 바라보지 못하고 몰개성한 자신의 또다른 의지라 생각해서 발생하지 않던가.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법륜의 주장은 자녀에게 '손을 떼라'이다. 물론 조건은 언제까지는 돌보아주고, 언제부터는 보내주라는 이야기지만.

9. 금강경 강의 - 법륜

* 쉽게 읽히지만 쉬운 내용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실천의 문제이다. 앞으로도 가끔씩 열어보며 보고 싶다.

10. 인간 붓다 - 법륜

* 인도의 낯선 지명들과 인명들이 독해를 떨어뜨린다. 난 이런 독서에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인간 붓다의 모습을 충실하게 그려 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는 없다.

11. 파우스트 - 괴테, 이인웅 역

* 독서를 끝내고 문득 든 생각은 '이명박이 파우스트를 좋아할 것이다'였다. 궁금해서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유인촌과 함께 파우스트 공연을 관람한 기록이 검색된다. 어찌되었든 난 최후에 신의 손길에 의해 구원 받는 이 이야기 구조가 정말 싫다. 

12.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 위화

* 공지영은 '자신은 위화의 열렬한 팬'이라고 이야기한다. 위화의 저서를 처음 접해본 입장에선 아직까지 팬으로 자처하기에는 어려울 듯하나, 당대 중국의 풍속도를 간명한 단어들로 풀어써낸 작가의 통찰력과 관찰력, 그리고 세심한 기억력에 감탄할 만하다. 후에 '허삼관 매혈기'를 읽어볼 생각이다.

13. 서울은 깊다 - 전우용

* 가장 즐거웠던 독서이다. 어느 분야나 '좋은 학자'가 있길 마련이고, 그리고 이런 좋은 학자가 써낸 '좋은 책'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되기 싫더라도 그 앞에서 '좋은 독자'가 된다. 훗날 다시 읽을 생각이다.

14. 당신들의 천국 - 이청준

*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제 3부에서 '사랑과 믿음'이라는 소설의 주제는 내가 납득하지 어려운 측면들이 많다. 마치 '사랑과 믿음'은 천상의 신을 생각하게 때문이다. 뒤에 있는 김현의 비평문은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비평문이다.

15. 백석을 만나다 - 이숭원

* 앞서 이야기한 '좋은 작가의 좋은 책'이다. 평생 백석을 연구한 연구자로서, 자신의 연구 업적의 성과를 이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해놓았다. 학자의 건강한 자부심이 밉지 않다.

16. 126편 정지용시 다시 읽기 - 권영민

* 정지용에 대한 개인적 애착의 경험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동안 정지용 시 해독을 어렵게 하는 요소들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저 즐겁게 읽기만 하면 된다. 따라가다 보면 정지용이란 시인이 보인다. 그렇지만 후반부에는 작가의 힘이 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닌가? 원래 이런 형식의 책이 지닌 특성일까. 원문-한글-현대어 번역으로 되어있지만, 이 구성이 그다지 좋지 못한 느낌이 든다. 기실 한글 번역과 현대어 번역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현대어 번역을 말그대로 '번역'차원에서 써버렸을 어떨까.

17.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 과학 책을 읽기 싫어해서 참 질질 끌었지만, 초반부의 어려운 독해를 마무리하면 후반부의 작가의 주장들에 대해 경탄을 하게 될만하다. 독서 기간이 좀 길어서 흐름을 쉽게 따라가지 못하고 억지로 밀고나간 부분이 있어서 독서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초벌 독해를 끝냈으니 훗날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정말 참신한 사고 방식이다. 특히 생물학과 문화인류학-윤리학(구체적 언급은 없었지만)이 만나는 지점은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죄수의 딜레마를 이런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18. 참말로 좋은 날 - 성석제

* 정말 즐겁게 읽었다. 소설의 암울함과 우울함이 저 뒤편으로 잠시 미뤄두면, 일상의 자리에 일상의 지위를 부여해주는 작가의 시선에 감탄을 내두를 수밖에 없다. 상황이나 배경 묘사가 과하다 싶다가도, 그게 결국 우리의 일상이지 않았나를 생각해보면 작가의 선택과 묘사가 적정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일상의 살얼음판으로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며 걸어나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일상적으로' 묘사한다. 언젠가는 다시 읽게 되겠지. 수업 시간에 함께 읽어보고 싶은 단편이 하나 있다.

19. 발자크 평전 - 츠바이크

* 소설가 발자크의 생애를 청신한 언어감각으로 풀어낸 츠바이크의 문장력에 감탄하며 순식간에 700쪽의 분량을 읽어내려갔다. 발자크의 삶 자체로 큰 재미를 주기에도 충분한데, 츠바이크의 문장에 담겨있는 유머감각이 독해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책을 구할 수 없어서 도서관에서 제본을 떠서 구매했다. 제본을 한 노력과 대가가 헛되지 않았음이 뿌듯하다. 차후 츠바이크가 쓴 니체의 전기를 읽어볼 요량이다.

20. 나의 서양 미술 순례 - 서경식

* 누군가에겐 좋은 책이었겠지만, 미술과 그닥 친하지 않고 여행과는 더욱 친하지 않기에 지루하게 책을 넘길 뿐이었다.


현재 보르헤스의 '알렙'과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를 읽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이 책들은 읽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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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일상과의 화해 2014. 1. 9. 23:23
우리에게 예견치 못한 미래를 준비해놓았지만
나에겐 예견치 못한 과거도 준비해놓았구나.
가끔 옛시절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기억들을 더듬어 가면 생각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모습과 일들을 전해주기도 한다. 언제 그런 적이 있다는 듯 놀라며 듣곤 하다 과거는 이미 명멸한 별에서 흘러나오던 별빛처럼 선연히 빛이 난다. 그리고 함부로 쏘았던 화살이 시간 속에서 수없이 단련되다 결국 나에게 돌아왔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쓸쓸해지곤 한다. 삶의 맛을 알아간다 생각하던 게 결국 몇 겁의 시간이 아닌 몇 겹의 시간만을 살아낸 결과에 불과해서 그럴까. 과거는 분명한 숙연을, 철길처럼 빛나는 치욕을 선사하는 데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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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計를 죽임

 정 지 용

 
한밤에 壁時計는 불길한 啄木鳥 !
나의 腦髓를 미신 바늘처럼 쫏다.

일어나 쫑알거리는 時間을 비틀어 죽이다.
殘忍한 손아귀에 감기는 간열핀 목아지여!

오늘은 열 시간 일하였노라.
疲勞한 理智는 그대로 齒車를 돌리다.

나의 生活은 일절 憤怒를 잊었노라.
琉璃안에 설레는 검은 곰인 양 하품한다.

꿈과 같은 이야기를 꿈에도 아니 하랸다.
必要하다면 눈물도 製造일 뿐!

어쨌던 定刻에 꼭 睡眠하는 것이
高尙한 無表情이오 한 趣味로 하노라!

明월 ! (日子가 아니어도 좋은 永遠한 婚禮 !)
소리없이 옴겨가는 나의 白金체펠린의 悠兪한 夜間 抗路여!


-

근래의 독서 중에서 가장 즐거웠던 점을 몇가지 꼽자면 비교적 해독이 좀처럼 쉽지 않은 시들에 대해 국문학자들이 나름의 연구 끝에 해석한 글을 읽는 일이다.

백석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이숭원 교수의 '백석을 만나다', 국문학 전공 제 2세대를 이끌어나간 권영민 교수의 '정지용시 128편 다시읽기'가 주목할만 하다.

두 저서 모두 노교수들의 학자적 정신(스칼라쉽)과 시인에 대한 사적인 애정이 각별하게 담겨져 해석의 진위와 근거가 다소 미덥지 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대개 수긍할 만하다. 

백석과 정지용 모두 일제 강점하에 시작활동을 전개해 나간 사람들로, 일본 유학을 통해 근대적 문물과 사고방식을 수학했지만 주류 흐름과 달리 산과 자연, 그리고 그곳에서 머물던 시절의 추억들을 절절한 언어로 남긴 시인으로 유명하다.

근대 문명의 세례를 받아 이 시인들을 뛰어난 언어 묘사로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모더니스트로 묶기도 하다만, 굳이 억지로 범주화할 필요가 있을까. 어찌되었든 시는 이미지와 함께 태어나서 이미지와 함께 생동하므로.

정지용 시를 살펴보던 중 가장 재미있는 시는 위에 걸어놓은 시가 아닐까 한다. '산수시'로 명명되는 자연적 삶의 시공간을 그려내는 데 탁월했던 시인이 다소간 난폭한 시어인 '죽이다'를 끌고 오고, 자연을 형상화한 이미지나 시어들을 끌고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시계를 죽임'은 약 4년 전에 처음 친구의 블로그에서 알게 된 시이다. 당시에는 참 독특한 시구나 하고 넘겨 짚었지만, 최근에 읽었던 '서울은 깊다'(전우용)를 읽고 상기되는 부분이 있어 글을 적는다.

'서울은 깊다'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최초로 기계식 자명종이 들어온 시기는 1631년의 일이었다. 그 이후 1888년에 경복궁 관문각에 최초의 시계탑이 세워진다. 하지만 이때의 시계는 실용적 성격이 짙기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깊었다고 할 수 있었다. 서구 문물의 제유라고나 할까.  혹은 근대적 소품이라고나 할까. 현재 종로 YMCA 사옥에 공공시계가 1902년에 설치된 이후 약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미쯔코시 백화점에 시계가 걸리기 시작한다.

'시계를 죽임'이 발표된 1932년은 시계가 서울 전역에 서서히 맹위를 떨치기 전이었으나, 근대적 표상으로서 근대 문물의 세례를 받는 이들에게는 어떤 권위로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전근대인은 시계 바늘을 어떻게 독해해야 하는지 몰랐을 뿐더러, 시계의 존재 의미를 굳이 부여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전근대적 사념과 근대적 사념이 서서히 충돌하던 그때, 시간의 의미는 서서히 변해갔을 테다. 천체의 운행 속도, 지구의 공전, 자전, 달의 공전으로 대별되는 시간 관념에서 수치로 물화한 근대적 시간들은 본래의 시간 속에서 그 신성성과 자연성을 앗아갔을 것이다. 땅과 함께 호흡하는 시간이 아닌, 출근과 퇴근 그리고 이합집산을 규제하는 시간으로 변모해간다.

아마 정지용은 이 시계 속에서 근대적 표상의 시간 개념을 죽이려 하지 않았을까. 시계를 죽이고 그가 구현하려 했던 시공간은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 아니었을까. 참으로 모던한 시이지만 결국 그 모더니티로 모더니티를 살해하는 정지용의 시가 이제 새삼스레 다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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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다는 서술어가 아니며 양화사일 뿐이고, '내가 존재하다'라는 문장은 일종의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다고 그가 이야기했을때 쉽사리 납득할 수 없었다. 어쨌든 오류인 질문 자체가 개념의 폭력을 저지르고 그러니 우린 어떻게 살 것인가에 천착하라는 말을 한다. 가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그건 내가 충분히 어리석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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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od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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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세상이 기지개를 켜지 않은 새벽 5시 30분 정도에 길을 나선다. 길을 나서면 조금씩 느껴지는 청량한 기운의 바람이 살짝 기분을 북돋는다. 저 끝으로 치달을 것만 같던 여름이 한풀 꺾이는 그런 공기다.

저녁 19시 경에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계절은 길목마다 자신의 모습을 숨겨두었다. 골목을 돌면 불어오는 가을의 바람이 하루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나름대로 세초에 계획했던 운동하기가 어느덧 9개월 째로 접어든다. 노로바이러스에 잠시 감염되었을 적을 제외하면 올해 동안은 거의 체육관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주 6일 운동을 지켜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영양부족과 운동부족으로 인한 급격한 몸상태의 저하로 인해 시작한 운동이, 어느새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운동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깨닫는 점이 많아진다.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 인간은 더할 나위없이 복잡하고. 그 복잡다단한 삶의 결 속에서 마음도 얼마나 복잡한 구김살을 지니며 살아왔는지. 사람의 마음이 일렁이는 저 물결처럼 흐트러지긴 쉽지만, 단단한 바위처럼 가만하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운동이라는 것을 깨닫기에 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등학교 시절 느꼈던, 커간다는 느낌. 그리고 자라나고 있다는 느낌이 날 무엇보다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또 한가지는 우리가 얼마나 생각없이 음식을 먹어대는가 하는 점을 깨닫게 된다. 집요하진 않지만, 남들이 보기에 유별할 정도로 요새 챙겨먹는 편이다. 챙겨먹어 보았자 음식물의 칼로리를 계산하고, GI지수를 검토하며, 적기적시에 어떤 음식물을 섭취하면 균형있는 식단이 되는지 정도를 확인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들이 '얼마나 기본에 충실한 음식을 먹는지'가 삶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을 몸소 깨닫게 한다.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나의 삶을 걱정한다. 생각보다 적응을 잘 못하며 지낸다고 판단하는 듯하며, 그리고 예전만큼 사교적이지 않은 태도로 살아가기 때문일테다. 그러나 정작 나는 겪고 있는 모든 일들과 시간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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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비로소 시작이다. 업무 분장과 입학식, 학교의 시계추는 2월에서야 진자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1월의 시간은 땅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씨앗과 같은 삶을 살아내었다. 규칙적인 식사와 약, 운동 그리고 자유로운 독서로 점철된 생활이었다. 조용하게 입춘이 오고 봄의 기운을 얼마간 섞어낸 오후의 햇살이 땅에 내려 앉을 즈음에서야 개학이 왔다. 

그간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좀 더 성숙했는지 성장했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여러 일들에 초연한 마음이 약간이라도 단단해졌다. 기실 안으로 삼켜내는 일들을 초연함이라는 말로 바꾼 것에 불과할 지라도, 분명 나이 먹으며 날 좀 더 따스하게 만드는 변화였다. 

운동이 즐거워졌다. 일주일 중 하루만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6일 동안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지 2개월이 되어간다. 앞으로도 가능하면 꾸준히, 열정적으로 이 취미에 임할 생각이다. 생활의 활력을 얻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하체가 굵어지면 하루를 견디는 능력이 높아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의 메커니즘은 복잡할지 모르지만, 그 운동을 수행하는 사람의 머리는 단순함으로 가득하게 된다. 무게, 횟수, 자극, 갈증. 단순함이 정신의 노폐물을 여과없이 흘려보낸다.

앞으로의 생활을 굽어보자면, 이번 업무 분장에서 비교적 한직으로 분류되는 부서로 배치가 될 예정이다. 물론 확정 전까지 어디로 갈 지 모르지만, 부장님의 언질이 먼저 있었기에 변동 사항이 발생활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을 듯하다. 한창 일을 배워야 할 시기에 한직으로 배치된다는 걱정이 있지만, 교사의 큰 임무는 행정이 아니라 교육임을 상기하여 올 한해 동안 교과 연구와 학생들의 취미 발전을 꾀할 수 있도록 연찬에 매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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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에 쉽사리 들지 못하고 있다. 연말이 주는 설렘과 아쉬움의 감정의 교차를 넘어 여러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의 일을 말하자면, 우선 대다수의 굵직한 일들은 이미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다. 아이들을 다음 학년으로 보내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생활기록부 작성이 다음 주 수요일까지 일단락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업무 분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내년에 학교에서 다시 어떤 일을 맡게 될 지 모른다. 학교 특성상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려면 수시 혹은 입학사정관제도를 이용하는 방식이 수능을 보아 대학에 가는 방식보다 한결 수월하다. 그리고 수시나 입학사정관제도에서 긍정적인 결과물을 내기 위해선 생활기록부의 행동발달사항에 학생의 인격과 기본 소양 등이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잘 들어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서 행동발달사항에 들어가야 하는 담임의 글귀는 다섯 줄에서 여섯 줄은 분명 부족하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선 일말의 양보는 없다. 어떻게 한 사람을 5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다. 심한 경우 A4 용지 한 쪽에 대당되는 분량을 한 아이에게 바치기도 했으니. 그렇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좋은 의미에서든, 그렇지 않은 의미에서든 동료 선생님들의 눈치이다. 내가 생활기록부에 적은 것은 소설이 아니라 정확히 사례와 사실에 근거해 이 학생이 어떤 인격체임을 알 수 있는 지 친절하게 알려준 것이고, 이것마저도 한 학생의 모습을 나타내기에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왜 이런 행위가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는 행위가 되는 것인지 이해는 간다. 하지만 최근 몇 주간 이러한 일로 인해서 동료 교사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들이 썩 기분 좋지 않았다.

  반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고, 이제 헤어진다. 언젠간 이러한 인간적인 아쉬움과 지리멸렬함이 업무의 순환 정도로 생각할 날이 오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헤어짐을 감당하기에는 약간 벅차다. 내 손으로 강제전학을 보낸 반 아이가 있다. 26일에 전학을 가고 난 그 아이의 눈을 잘 바라보지 못한다. 오늘도 피했다. 내일도 피할 것이고 여전히 비겁할 것이다. 

 이 학교와도 근속년수를 채우지 못하고 전근을 가야할 상황이 떨어질 수 있다. 사람의 소문을 별로 믿지 않지만, 내가 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돈다고 한다. 학교에 자리가 하나 비어 나가야 될 상황이 되면, 신규교사로서 동료교사들이 나가라고 하면 어쩔수 없이 나가야 하는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있다. 그곳에서 난 경력도, 나이도 제일 부족하기 때문이다. 확정된 일이 아니지만, 일년 동안 학교와 아이들에게 무던히 헌신하며 일해 온 결과가 결국 이러한 이유로 학교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직장은 생계를 보장하지만 동시에 외로움도 보장한다.

 대선이 끝났다. 난 슬펐고, 어떤 이는 왜 세상이 끝날 것처럼 난리들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세상이 끝나지 않는 것이 슬펐기 때문이다. 현실이 아니기를 바랐고, 여전히 슬프다. 막힌 입으로 학교에 가서 아이들 앞에 서는 일들이 고달프다. 고등학교 시절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를 읽고 느꼈던 먹먹함이 지금 나를 짓누른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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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하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블로그의 주인장이지만, 그동안 이 블로그에 출입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음 계정이 해킹 당했기 때문이다. 계정을 손바닥 안에 넣었던 뛰어나신 해커(?)께서는 네이트온과 다음 카페를 돌아다니며 지인들에게 금전 요구와 성인 광고를 줄기차게 해왔다고 풍문으로(...) 전해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만 지인 중에서는 금전 요구에 응한 사람은 없었다. 휴면 계정이었지만 비밀번호를 바꾸고 다시 본인 인증을 하는 몇가지의 절차들이 성가시기에 밀어두고 있던 차에 오늘에서야 계정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해킹을 당하고 주변 지인들이 나에게 연락을 하며 '왠지 선우가 아닌 거 같았더라'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러한 말들이 진정 지인들이 나를 어떠한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괜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청소년기와 그 이후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자아 성찰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게 해준 해커가 새삼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카페에 가입된 흔적이라든가 혹은 카페에 게시된 성인 광고글들은 마치 기억이 잠시 작동을 멈추었을 때 내가 했던 일들처럼 생경하기만 했다.

 온라인 상에서 나의 정체성이었던 나의 계정이자 ID가 오프라인 상의 나에게 지배를 받지 않고 휴업을 하고 있었을 때, 어떤 이가 또다른 나를 움직여줬다는 게 나 대신 일을 해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월요일이다. 누군가 나 대신 나의 일을 대신해주었으면 한다. 그게 설령 오프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사기극이라 할 지라도, 책임감의 족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사람들의 반응을 재미나게 지켜보겠지.

2, 항시 매년 가을이 찾아 올때면 부족해진 일조량과 함께 긍정적인 기운까지 부족해지는 고질병이 찾아온다. 의식적으로 최근 4주간 지속적으로 등산을 다녀오는 방식으로 이러한 질병을 치유해보려 노력해보았지만, 결국 그닥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곤 한다. 평일 동안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감정의 소모전과 충돌을 한껏 경험하고 나면 으레 주말에는 기운 없이 방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는 게 일이 되었다. 아니면 영화를 보면서 잠시나마 생각의 지침을 억지로 돌려놓기도 하고.

 작년 즈음에 한창 들락거렸던 예비 국어 교사들이 모인 다음 카페에 들어가보았다. (그곳에선 뜬금없이 내가 올린 성인 광고 게시물이 있었다.) 게시판은 크게 예비 교사들이 이용하는 곳과, 인증을 받고 현직 교사들이 이용하는 게시판이 있다. 여전히 예비 교사들의 게시판에는 올해 치뤄지는 시험에 대한 중압감과 삶에 대한 힘겨운 모습들을 적어내려간 글들이 많았다. 그리고 얼마간의 동정심과 약간의 연민으로 글을 읽고 있노라면, 싸구려 위안을 얻거나 혹은 위악적인 가정법으로 나의 경우로 대입하곤 했다.

 올해부터 이용하기 시작한 현직 교사 게시판은 별로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그곳에 어떤 글들이 올라오나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그곳에 있는 글들을 보니 나를 더 슬프고 고독하게 만들었다. 적은 봉급에 대한 불만, 의사인 남자 친구 혹은 배우자를 원하는 여자 교사들의 글, 결혼 생활에 대한 불만, 그리고 학교의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에 대한 고충들, 학부모에 대한 저주의 글들... 나도 기실 이들과 비슷한 고민과 불만을 안고 사는 불안한 존재여서 그랬을까. 삶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사람이 나였다는 마음에 괜시리 마음이 아파진다.

3. 11월 17일에 대학교 시절 몸 담았던 동아리인 '노래나래'에서 OB라는 명목으로 공연에 참가하게 되었다. 전자기타와 키보드를 맡아 공연에 참여하는데, 어제가 첫 번째 공연 연습이었다. 연습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비가 많이 내려 그랬을거라 생각하지만, 1학년 시절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곡을 열정적으로 연습하던 그때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라 씁쓸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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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의 억새


정확히는 해안이 아니었어.

북해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능선,

그 언덕에 핀 지천의 은빛 억새꽃이

며칠째 메아리의 날개를 내게 팔았지.

저녁 바람을 만나는 억새의 황홀을 정말 아니?


그래도 가을 한 자락이 황혼 쪽에 남았다고

암술과 수술을 구별하기 힘든 억새꽃이

뺨 위의 멍 자국만 남은 내게 다가와

만발한 집착은 버려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왜 오래 장소에만 집착하며 살아왔는지,

내가 사는 곳에는 사철 열등감만 차 있고

눈이 올 듯 늘 어둡고 흐려야만 안심을 했지.

그래서 순천에서 만난 억새는 놀라움이었어.

북해에 살던 그 풀들도 친척이 된다는 말,

얼마나 내 묵은 심사를 편하게 해주었던지.


나는 이제 아무 데나 엎드려 잠잘 수 있다.

하루 종일 자유롭게 길 떠나는 씨를 안은 꽃,

꽃이라 부르기엔 눈치 보이던, 북해의

외딴 억새도 고향의 화사한 피의 형제라니!

저녁이면 음정이 같은 메아리가 된다니!


변하지 않는 시야에 서 있는 귀향의 끝,

평범하게 말없이 살자고 약속했던 그대여,

끝없는 추락까지 그리워하며 잠들던 그대여,

나도 안다, 우리는 아직 여행을 끝내지 않았다.

내가 찾던 평생의 길고 수척한 행복을 우연히

넓게 퍼진 수억의 낙화 속에서 찾았을 뿐이다.


 주말에 ㅇㅈ의 추천으로 김현의 '행복한 책 읽기'를 구매하려 서점에 갔다가, 문지사 시집 코너에서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둘러보았다. 그때 책 이야기를 하며 나왔던 황인숙 시인의 시집을 보려함이었는데, 알고 보니 오래 전에 황인숙의 시집인 '리스본 행 야간열차'를 사두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이유었는지 사두고 읽지 않았지만, 그냥 가기 아쉽다 싶어 문지사의 '400'번째 시집을 구매하였다. 예전에 구매했던 300번째 시집은 '쨍한 사랑 노래'라는 시 엮음집인데, 그동안 문지사에서 나왔던 시 중 연애시를 선별해서 엮어놓은 기획물이었다. 음반으로 따지자면 '컴필레이션 앨범'과도 같은 것인데, 의도가 어찌되었든 기획이 참신해서 기분 좋게 읽었다. 

 최근 기획작인 400번째 시엮음집은 '내 생의 중력'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시집이다. 그리고 문지 시인선 300부터 399까지의 시집에 실려있는 시들을 알 수 없는 기준에 따라 선별하여 엮어내었다. 기실 이런 류의 '컴필레이션 앨범'과도 같은 시집을 사서 읽어보는 이유는 다양하게 설명이 가능한데, 나처럼 시집을 사두고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는 게으름뱅이를 위함이기도 할 테이다. 

 어찌되었든 한 시집 안에 한 시인의 다양한 시가 실려 있는 구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인의 시가 한 편씩 모여 수를 이루는 광경을 보는 재미는 꽤 재미있기도 하다. 황동규 시인, 정현종 시인부터 남진우를 거쳐 최근 김소연라든지 김경주 시인의 시가 하나의 책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은 마치 최근에 보았던 런던 올림픽의 폐막식과 같은 모습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퀸과 뮤즈가 한 무대를 공유하며 공연을 했던 그런 모습 말이다.

 신형철 평론가를 통해서 알게 된 강정이라든지, 박정대, 혹은 김민정, 심보선, 황병승과 같은 젊은 시인의 시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문득 시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손잡이마저도 칼날인 자신의 마음을 결사적으로 부여잡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에게 예민한 감수성이란 축복일까 혹은 불행일까. 아니면 그저 운명일까. 이 시집에 실려있는 젊은 시인들의 여리고 예민한 감수성은 '생의 중력'이 주는 고통을 호소한다. 그렇지만 나에겐 이런 시편들이 던져주는 고통의 저릿저릿한 양상들을 감상할 감당이 되어있지 않아 부담이 되곤 한다. 공유하지 못하는 아픔의 절규를 일방적으로 듣고 있는 건- 게다가 빼어난 언어로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한다면- 더 이상의 내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느끼게 할 뿐이다.

 그렇지만 '내 생의 중력'에 실린 황동규와 오규원, 마종기의 시들은 젊은 시인들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젊은 시인들의 시편이 자신들을 짓누르는 '중력'에 무게를 실어 놓았다면, 노장(?)들의 시편은 그저 중력의 작용을 받는 '내 삶'을 묵묵히 그려내는 모습이랄까. 이성복 시인은 시라는 것은 한창 아파할 수 있는 청춘의 시절에 써야한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난 어느 한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듯 써내려간 그들의 시가 오히려 더 좋았다.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칼날을 잡아 손바닥의 흉터마저 손금이 되어버린 모습을 보는 건, 숙연해지기까지 하다. 

 어느새 억새밭의 수척한 행복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함께 눈을 감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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