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의 화해'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12.09.21 잘 안 되는 것들
  2. 2012.09.13 오늘
  3. 2012.08.10 고향에 내려와 1
  4. 2012.08.06 여름날들
  5. 2012.07.07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6. 2012.07.04 이름대로
  7. 2012.06.28 귀와 눈
  8. 2012.06.19 몇 개의 단상들
  9. 2012.06.18 블로그를 시작하며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힘드니 아침 밥을 먹고 나오기가 힘들다. 학교에 출근하여 담배를 피우려는 욕구를 참아내기가 어렵다. 읽기로 한 책들이 산적하니 있지만 일상의 피로함을 핑계로 미뤄두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받는 기타 레슨을 위해 해야할 연습을 요새 부쩍 하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께 안부를 전해드리기에 효성이 지극하지 않다. 사람들에게 불친절하기 대하여야 할 때 쉽사리 그러지 못함을 한탄하기도 한다. 저녁의 야식과 간식거리를 오만가지 이유를 대며 쉽게 사오곤 한다. 학생들과 사소하게 약속하였던 몇가지 일들을 아직 지켜내지 못하였다.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들으며 고요한 마음으로 감상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아직 사람을 대하고 대화를 주고 받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글로 남기려 했던 생각들과 이야기를 곧잘 불러내지 못하여, 기록하려다 지운 적이 여러 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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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상과의 화해 2012. 9. 13. 22:54

 게으름이 죄악이라면 훗날 영혼이 머물 곳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을까. 정신 없이 아침에 일어나 택시를 타고 가던 중 방 안의 창문을 닫지 못하고 나왔음을 알았다. 집에 들어오니 나보다도 먼저 방 안에 가을이 들어와 있었다. 선선하지만 계절이 주는 쓸쓸함도 함께 있다. 흔히 집 안의 쓸쓸함을 형용하고자 할 때 필요한 소재로 '된장찌개 끓는 냄새'를 활용한다. 방 안의 서늘한 공기 대신 된장국 혹은 청국장 냄새가 이곳을 자리하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예상치 못한 시험 감독 보충과, 정규 수업, 그리고 학급에서 문제를 일으킨 일로 생긴 선도위원회, 논술 방과후 학교 수업, 교가 반주곡 제작으로 인한 야근까지 쉴 새 없이 학교에서 일을 하고, 일을 했다. 그 와중에 반에서 아끼던 제자 하나가 전학을 갔고, 아쉬운 마음에 슬며시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학생의 집까지 짐을 들어다 주었다. 그리고 평소 힘들게 하던 제자에게 화를 냈다. 방과후 학교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 자기 자랑을 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망상을 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황지우 시인의 말을 훔치자면 '오늘도 하루를 저질렀다.'

 선도위원회라는 자리에 처음 가보게 되었는데, 소위 피해자측과 가해자측의 학생, 학부모들이 학교에 '불려와' 앉아 있고 그 앞에는 학년 부장, 학생 부장, 담임 교사 등이 앉아 있다. 타인과 충돌이 일어나면 으레 그렇듯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성격(정확히는 합리화를 하면서 상황을 회피하는 습성)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잘잘못 따지기와 기 싸움과 알력 싸움이 뒤범벅된 학부모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그곳에서 담임으로서의 나는 그 누구의 변론과 변호, 그리고 의견을 제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듣고 있었다. 교감 선생님을 위시한 선배 선생님들은 그런 자리가 어느 정도 익숙한 듯 쉽게 중재하려 하고, 의견을 꺼내는 분위기긴 했지만. 서로의 입장과 난처를 내세워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고 상대의 잘못을 조명하려는 분위기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오늘 내린 가을비처럼.

 음악실로 와서 ㅇ선생님의 고민 혹은 불만 사항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몸이 피곤했는지, 그 분이 하던 말씀을 쉽사리 잘 따라가지 못하였다. 하지만 평소 선한 인상과 웃음으로 인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던 ㅇ선생님이 힘들다는 말씀을 하니 기분이 그리 좋진 않았다. 그리고 내 힘으로 그 분의 고통을 적게 나마 덜어 드리지 못한 데 마음 속으로 미안함을 느꼈다. 결국 다른 동료 선생님의 의사 결정으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고민이었는데, 사람 간의 일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또 쓸쓸해졌다. 

 멍청하게도 문득 문득 생각해본다. 사람이 한데 어울려 살면서 다투거나 싸울 일 없이 살아가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의 규율과 질서는 없는 것일까. 아직 '사회'인이라는 칭호가 나에게는 텁텁하다. 순진무구한 눈으로 이 사회가 멸균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아직도 지니고 있진 않지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나 이 일에 대해선 더 이상 깊게 쓰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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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랜만에 대전으로 내려왔다. 태어나 자란 곳이 고향의 정의라면 엄밀히 대전은 고향이 아니다. 단지 유년기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지냈고,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시간들을 함께 한 곳이라 고향처럼 느끼고 있을 뿐이다. 이미 그곳에는 함께 동네를 뛰어 놀거나 어울려 피씨방을 가던 친구들이 이제 이곳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것 말고는 변한 것들이 별로 없었다. 예 살던 아파트 단지 안의 놀이터와 여러 놀이 기구들, 흙들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그저 여기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등하교길에 보던 가게들은 여전히 대다수가 그 모습을 지켜내고 있었다. 서울에서 거주하던 곳은 하루가 다르게 가게들과 도로의 모습이 쉬이 바뀌는 데, 이에 비하면 아직 대전은 그때의 색 그대로를 지켜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한다.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인 ㅈ선생님을 만나 뵈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를 위한 많은 이야기와 조언들을 아껴주시지 않았다. 그렇지만 수긍이 갔던 부분들도 있었고, 아직은 내 뜻대로 밀어 내며 가고 싶은 부분들도 있었다. 단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던 것은, 고향은 아니더라도 수원 같은 준 수도원 도시라든가, 금산이나 옥천과 같은 충남북 지역의 도시로 내려가 보는 것이 어떤지 하며 조언해주셨던 말씀이다. 그 말씀을 듣기 전에라도 항상 서울에 있으면서 다른 도시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은 항시 하긴 했지만, 막상 그 생각을 남과 공유하게 되니까 어렴풋하던 계획이 무언가 좀 더 실제적으로 와닿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분명 언젠가 서울을 떠나게 될 것이다. 서울을 떠나려는 이유를 묻는다면 지금의 봉급으로 집을 구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기실 집을 구할 수는 있다. 대출을 받으면 되지만 슬슬 이곳에 진력이 나는 부분들이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있을 3학기 동안의 시간에 해야 할 일은 확실하게 해둔다는 나름대로의 약속을 잡아 놓긴 하였다.

 고향에 내려와 집에 들어가니 치매에 걸리셨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니의 보금자리였던 침대를 부모님께서 분해하고 계셨다. 공교롭게도 내가 집에 들어오기 하루 전에 할머니께서 가출을 하셨고, 이로 인해 집이 발칵 뒤집혀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부모님의 결론은 상태가 많이 악화되셨고,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 일어나면 안 될거란 생각으로 요양보호원으로 할머니를 보내게 된 사정이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한결 표정이 좋아지셨다. 그렇다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병 수발을 들던 어머니는 힘들거나 슬픈 기색을 하시는 법이 없으셨다. 무뚝뚝한 아들 앞에서 당신은 그저 삶을 윤기있게 칠해주는 농을 건네고 계실 뿐이었고, 아니면 빨래는 개다 주무셨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4:40 정도에 조용히 일어나셔서 아침 밥을 언제나처럼 준비하셨다. 그 어떤 위대한 삶도 어머니의 삶에 비할 수 있을까 가끔 반문해본다. 묵묵한 삶이 가장 위대한 삶일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살지만, 나의 어머니가 그러한 삶을 보여주신다는 걸 눈으로 보는 나는 가끔 분에 겨운 축복을 받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내가 고향에 잘 내려가려 하지 않는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이렇듯 내 삶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어머니 앞에서 부끄러워지기 때문이다. 이제 드럼을 배우신다고 하시는데, 서울에 올라가면 드럼 스틱과 드럼 패드를 하나 구해 보내드릴 요량이다. 부디 앞날의 삶이 즐거워지셨으면 하고 멀리서나마 바랄 뿐이다.

 금요일에 열리는 교직원 회의로 인해 난 오늘 아침 기차를 타고 서울로 다시 올라간다. 그리곤 한일전 축구 경기를 보고, 2학기 개학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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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들

일상과의 화해 2012. 8. 6. 04:54

 곧 몇 시간 후 금곡 훈련장으로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간다. 번듯한 여행과 휴가가 없어서 그런지 이것도 나름 휴가라고 생각하지만 영 기분은 좋지 못하다.

 게리 무어를 듣다가 그리고 데이빗 보위를 듣다가, 유재하를 들을까 망설이다 이내 곧 음악을 껐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때 김현식의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온 마음을 다해 울컥하던 때가 그리워졌다. 그럼 지금은 그렇게 어느 한 노래의 구절과 가락에 느끼던 능력이 사라진 건가. 반문해본다. 그냥 음악보다 다른 것들이 그리워서 그렇지 않겠냐고.

 벌써 첫 번째 여름 방학이 끝나간다. 3주간의 시간들이었고 학기 중에 지나칠 정도로 사람에게 시달렸다는 상태를 경험하고 있었기에 그 무엇보다도 간절했다. 광장의 틈바구니 속에서 질식해간다는 느낌으로 꽤나 힘겨웠었다. 혼자만의 시간들과 공간 속에서 허우적대다 잠들고 싶었는데, 결국 다시 그 '누군가 혹은 무언가'들이 그리워지긴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예전과도 많이 달라진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족들이 그립고, 친구들이 그립고, 그리고 그들과 함께 먹는 식사가 그립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끓여주신 청국장과 된장국과.. 그저 '흰 쌀밥'이 그립다. 가끔씩은 예전에 잠시나마 만났던 옛 여자친구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직 가늠이 안되는 일이 많다. 사람이 지겨워 혼자를 즐겨도 결국 사람이 그리워 진다는 게, '사람'이라는 수많은 스펙트럼 속에서 내 머리 혹은 마음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원하는지.

 방학 동안 기타를 정말 열심히 치려고 했지만, 결국 비슷한 이유로 요새 시들하다. 손에 땀이 많아서 기타 줄이 쉽게 녹슬어 버리는데, 녹슨 상태로 기타를 치다보면 기타 자체에 그닥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 줄로 갈아주는 것도 은근히 부담이 된다. 2주에 한 번 꼴로 교체해주어야 하지만 한 팩에 7,000원을 하는 기타줄을 2주 만에 교체하는 게 꽤나 금전적인 짐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나의 소비 행태에 비한다면 개소리라는 것을 알지만. 손에 땀이 잘 나는 체질은 어렸을 때부터 컴플렉스였다. 다한증 정도까진 아니지만, 한 때는 수술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중학교 시절 교생 선생님은 음대를 다니던 여자 선생님이었고, 그 시절 변변찮던 난 그 선생님에게 항상 붙어다니면서 바이올린을 배우곤 했었다. 그 분이 졸업 연주회에 나를 비롯한 몇몇의 친구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뒤풀이 때 잠시 그분을 따라가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곤 가게를 나오면서 같이 손을 잡고 가자는 그분이 말을 했지만, 그때에도 손에 땀을 쥐고 있던 터라 섣불리 손을 내밀지 못하였고 결국 손을 잡지 못했다.

 오는 화요일 저녁 혹은 수요일 저녁에 고향 집에 내려가 볼 생각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잡념들과 생각들과 무더운 날씨가 어우러지는 바람에 시차가 바뀌어 버렸다. 항상 잠은 버거운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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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사람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만남 자체가 그리 중하지 않아 가벼운 신변잡기만 늘어놓다가 헤어질 요량이었다. 그리고 상대에게 내 이야기를 시시콜콜 늘어 놓고 싶지 않았기에 잠자코 귀 기울이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쪽에서는 내가 이야기를 더 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학교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여러 일화들을 더 듣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학교 안에서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조직의 시스템이 별로라고 생각한다는 하소연만 늘어 놓게 되었는데, 이는 순전히 내 못된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ㅊ 역시도 직장인이었고, 사회인이었다. 나보다 먼저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먹는 사람이었다. 별다른 기대 없이 대화를 주고 받다 ㅊ가 '3-6-9' 이론을 들려주었다. 어느 조직에서건 '3개월, 6개월, 9개월'이 고비이고, 그 시기가 지나면 '3년, 6년, 9년'이 고비라는 이론이었다. 한편으론 하소연이 좀 과했나 하는 생각에 미안했지만, 그래도 그 이론이 꽤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재 난 6개월 째에 접어들고 있으니 고개를 하나 더 넘어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하였다.

 ㅂ부장의 언사로 인해 지난 금요일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얼마간의 농의 섞여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 말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는 바람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그리고 당황한 내 모습이 더 싫어 얼마간 자괴했다. 물론 집에 와서 기타 몇 번 치니까 기분은 원래 상태로 돌아와서 다행이다. 하지만 그날 지하철 안에서 이 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보았다. 먹고 사는, 먹고 싸는, 원초적인 생활로 인해 스스로의 삶의 영역을 담보 잡힌 채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말도 안되는 소설의 줄거리를 스스로 써봤다.

 이 세상에서 돈을 벌며 아무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던 A. 하루하루 자신의 삶과 미래에게 대해 수없이 많은 회의감을 던져 놓는다. 집으로 향하던 마을 버스 안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4명의 이름모를 사람들이 타고 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반대편 운전자의 실수로 마을버스는 받치게 되고, 운전기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승객 4명은 중태에 놓인다. 기적적으로 A는 살아났고, 그 옆에 타고 있던 B라는 사람 역시도 극적으로 살아난다. 

 A는 죽음의 문턱에 발을 들여 놓았다 다시금 살아난 자신의 인생에 끝없는 찬사를 보내며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의 비루하고 지리멸렬했던 삶이 다시금 빛나게 된 일을 떠올려보고, '죽음'이 있었기에 다시 삶이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는 B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윽고 A와 B는 일상에 함몰돼 그저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체험을 제공해주어 다시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는 일을 하게 된다. (이 일의 이름이나 저 2인조의 이름은 짓지 못했지만)

 A와 B의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체험 후 일어났던 기적적인 삶의 변화. 간증은 곳곳에서 들려왔으며 철저히 음성적이었던 이 사업은 그럴듯한 조직 체계까지 갖추게 되었다. 심지어 경찰과 법관들도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이 죽음 체험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A, B는 이 사업을 진행하는 도중 스스로 자살하고 만다. 이유는 그 사업 역시 자신들의 일상이 되어버렸고, 그 속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소 재미도 없고, 교훈도 없는 이야기지만 문득 이 소설 속의 사람들처럼 대다수가 늙어가고 죽어가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기계처럼 반복되는 삶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취미마저 빼앗기며 살아간다. 그리고 연애와 가정까지도 위협당하며 나이를 먹어간다. 일상의 테두리 안에서 과연 나는 혹은 우리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답은 없지만 여기 시 하나는 있다. 근래 읽었던 시 중 가장 마음을 달래주었던 한 편이었다.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일기>, 안도현

[출처] 일기 / 안도현|작성자 오래된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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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대로

일상과의 화해 2012. 7. 4. 18:17

 벌써 나의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아직 이 세상에 남아 계신다. 가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면서 방금 전 밥을 먹은 나에게 또 밥 먹으라 말씀하시는 할머니는 지금 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 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주신 이름을 불러주시면서 이름 안에서 당신의 흔적을 느끼고 계실까 문득 생각에 잠기곤 한다.

 한 때 이름을 바꾸려고 스스로 이름을 다시 지은 적이 있었다. 정말 할 일이 없던 군 시절이었는데, 이름의 음상은 그대로 둔 채 한자어만 바꾸어 버렸다. (물론 행정적 절차가 까다롭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듣고는 마음 속으로만 이름을 바꾸긴 했지만) 이름을 바꾸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가부장적 질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우습지도 않은 의도하에 돌림 자를 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름에 들어간 글자인 善자가 그렇게도 싫었다. 지금도 싫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알게 모르게 사람이 이름처럼살게 된다는 족쇄에 스스로 가두어 언젠가 나도 善해질까봐 싫어했다. 그렇다고 惡이 좋은 건 아니지만, 착하다는 건 아무래도 내가 손해보면서 살아가리라는 뜻과 같다고 느껴왔다. 일종의 착한 아이 컴플렉스에 걸리지 않으려는 몸부림처럼.

 얼마 전 어머니께 전화가 걸려 왔다. 보통 묻는 안부 인사가 지나간 후 뜬금없이 어머니께서 이름을 바꾸셨다고 말하셨다. 일본식 이름으로 '~子'식의 이름도 아니었고, 전혀 촌스럽다고 느껴지는 이름도 아니었기에 개명 사유가 궁금해졌다. 여쭈어보니 당신은 '앞으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라는 이유로 바꾸셨다고 한다. '갈 지'자에 '즐길 희'자. 그동안 어리석고 부족한 나로 인해 스스로의 인생을 충분히 즐기면서 살아가지 못했음을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한 없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앞으로 당신의 삶이 당신의 이름대로 펼쳐지길 바라는 것 뿐이지만, 진심으로 그러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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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와 눈

일상과의 화해 2012. 6. 28. 00:16

 학교 독서 모임에 처음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전교조 회원이나 혹은 그에 동의하는 분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압도적이라고 해봐야 독서 모임의 총원은 대략 10여명이니, 인민군 궐기대회하듯 많은 수는 결코 아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을 읽고 독서 평론회를 하는 형식인데, 최근 신형철에 빠져있다는 핑계를 빌미로 읽어가진 않았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미국의 교육자, 혹은 교육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 책이었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기존 독서 클럽의 선생님들께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 그것에 대한 코멘트를 다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그곳에서 약 1시간 동안 침묵을 강요 당하고 있었다. ㅈ이라는 선생님께서 '20년'의 경력을 비호로 내세우시며 자신의 교육 경험담과 교육 철학관을 쉴 새 없이 나열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말이 많은 사람을 퍽이나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말을 많이 하면서 상대방의 입을 무언의 압력으로 닫게 만드는 사람은 동석 자체가 괴로운 법이었다. '선배'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교리 설파는 후배에게 고달픔이다. 후배가 자청하여 그 고견을 묻지 않았는데도, 후배가 그 자리에 '초대'받았는데도.

 그리고 스스로 배치한 단어들과 논리들이 하염없이 자가당착에 빠지며 바람이 나가 쪼그라든 풍선 같은 모습을 보는 건, 비록 남의 언사라도 내 자신이 무안해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자가당착에 성급한 장도리질과 못질을 번갈아가며 겸연쩍은 표정을 내비칠 때, 꽉 막힌 성리학자처럼 논어의 구절을 떠올려 볼 뿐이다. 뭐 '세 번 생각하고 말하라' 따위의 아포리즘을 말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며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경희대학교로 강연을 온 슬라보예 지젝의 강연을 들으러 가기 위해서 좀 더 일찍 학교에서 출발하였다.

 철학을 심도있게 자학자습하지 못했으며, 이해를 심도있게 하지 못하는 뇌의 주인인 관계로 지젝의 말을 곧이 곧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젝은 영어로 강연을 하고 있었지만, 동유럽 특유의 억양과 음상이 섞인듯 잘 알아듣기 힘들었다. 물론 영어 자체를 못하는 능력도 한 몫 거들 뿐이었고. 그렇지만 대형 화면에 지젝의 발화를 번역한 글자가 나왔기에 어느 정도 강의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메시지를 귀가 아닌 눈으로 들어 내려갔다. 

 독서 모임에서 혹사 당하고 강도 높은 노동을 한 귀가 덕분에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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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편집을 90% 정도 완료하였다. 나름대로 쉽게 출제한다고 하였지만 막상 풀어보니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조정할 필요성을 느끼긴 한다. 시험 문제를 풀기만 하였을 때는, 시험 문제를 출제한다는 게 썩 유쾌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수치화된 증빙 자료와 증거 자료로 아이들은 자신들의 밥벌이와 가장 큰 연관이 있는 대학에 진할테니까. 그렇다고 수치화와 계량화 이외의 좋은 평가 수단이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그럴듯한 대답도 준비해놓고 있지 못하다. 담당 해야할 학생의 수가 '너무나도' 많다는 변명은 하기야 하겠지만.

- 이번에 받을 첫 번째 여름방학의 기간은 대략 3주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름대로 마련해 놓은 계획은 다음과 같다.    1. 기타치기 / 2. 체중조절 및 꾸준한 운동 / 3. 독서                                                                                       이렇게 생각하니 벌써부터 빨리만 지나갈 듯한 시간들이 아쉽다. 모쪼록 좋은 시간이 되길 노력하겠다.

- 고민 상담에 관해, 고민의 당사자는 남이 그저 들어주기를 바란다. 물론 대화의 가장 좋은 길은 잘 들어줌으로써 당사자 스스로 자신의 문제와 고민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것인데. 오늘 ㅇ의 고민 상담사가 되어 이야기를 들어주는 점이 벅차기도 하였지만, 나름대로 진지한 '해결책'을 생각하여 제공하였다. 이렇게 성의있게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고민의 당사자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줄 잊고 있었다. 까맣게, 그리고 또다시. 여튼 조언대로 움직이지 않을 ㅇ의 미래를 생각하면, 인간에게 누구나 자유의지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게 되어 스스로 알게 모르게 불쾌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해결책'을 원하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은 단순히 하소연을 하기 위해 말하지만, 듣는 사람은 고민을 진정 풀어주려는 의도보다 그 하소연의 고리를 끊고 싶어 해결책을 내놓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내가 그렇듯이.

- 매일 저녁마다 꾸준하게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를 보내던 ㄴ이라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끊'긴'지 거의 13일 정도가 되어간다. 관계의 정체성에 대해 명확하게 하기에는 약간은 어렵고 섣불리 이야기하기엔 힘든, 그런 사이이다. 더군다나 흑심이 있거나 '사적'인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려는 의도 자체가 애초에 없었지만. 이렇게 아무런 징후 없이 관계의 고리가 느슨해져 끊기게 된 이유가 가끔씩은 궁금해져 하루에 5분 정도씩은 멍을 때리며 생각에 잠긴다. 내가 좋다고 말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썩 매력적이지 않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긴 하나보다. 아직까지도.

- 상상력이 빈곤해진다. 여자의 보드러운 손을 감싸 잡아본 지가 언제인지 사뭇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물론 애써 기억하라고 하면 하겠지만) 연애를 꿈꾸고 싶을 때는 가끔씩 불손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차마 남세스러워서 여기에다가 적을 수는 없지만, 아무튼 '여자'와 더 나아가 '여자친구' 그리고 '연인'을 상상해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연애세포가 방사능에 건조되어 박멸 당하진 않았다. 연애에 대한 숭고한 의지는 칸트의 별처럼 빛나고 있으니까. 허나 실세계에 없는 그것을 상상으로라도 직조하고 싶지만, 실세계에 널려 있기도 한 그것의 가능태들을 바라보며 어설픈 상상에 빠지는 게 가끔 우스워진다.

- 쓰고 나니 여기에 있는 대다수의 내용이 학교와 관련되었다. 시야가 점차 좁아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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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한 이유는 없지만, 직업 특성으로 인해 내밀한 감정과 사고까지 내비치길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종종 이용했지만 인터페이스의 불편함으로 인해 더 이상 그곳을 이용하는 게 맞질 않는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앞서 말한 이유, 즉 온전한 내가 드러나질 않게 바라지만 그 작은 욕심 또한 지켜나가기 힘들다는 점에서 필요한 용도가 있을 때 이용하려 한다. 그리고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나가는 기분이 들지 않고 남들에게 공고문 돌리듯 고개를 들었다 이내 떨구어져 '타임라인'을 이탈해가는 모습이 꽤나 '가벼운 글쓰기'를 강요하는 느낌이 들었다.

 조만한 과거 대학생 시절에 썼던 글들을 여기로 옮길 예정이다. 물론 남들에게 읽힐 만한 가치는 하등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그러한 생각의 궤적을 거쳐갔다는 의미 이상을 두지 않으련다. 앞으로 여기에 써나갈 글 역시도 마찬가지지만. 그리고 티스토리 블로그에 초대를 해준 후배 ㅈㅎ양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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